닌타마

거울의 숲

ㅇㄴㅇㄴ 2019. 11. 12. 00:11

 

"내가 미쳤거나 길이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야. 분명해."

키리마루와 산지로는 몇 시간 째 숲인지 늪인지 모를 곳을 헤매고 있었다. 

분명 몇 번이나 지나가던 산길이었고,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이 쉽게 지나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이 꼴이다.

드문드문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당연히 나올 산길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숲이라기엔 작은 논마지기가 잔뜩 있는 농지처럼 두렁이 거미줄 처럼 뻗어있고, 봄의 논처럼 물이 가득 차있다. 

논밭이라 확신할 수 없는 건, 물이 차있는 부분의 깊이가 얕은지 깊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닥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깊은 호수처럼 물그림지가 선명히 비친다.

그렇다고 농지라기에는 논 두렁마다 어느정도의 간격을 두고 커다란 나무가 끊임없이 서있었다. 나무 그림자도 거울마냥 수면 위에 떠오른다.

그런 광경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키리마루는 착한 닌타마라면 내뱉어서는 안되는 욕지거리를 벌써 몇번째 쏟아냈다.

산지로는 거기에 대충 응답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둘 다 뭐가 뭔지 모르고 있어, 일단 가던대로 계속 걷는다.

 

 

시선이 다르다.

키리마루는 느꼈다. 키리마루에게는 지겹도록 작은 호수와 가느다란 두렁과 나무들이 지리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산지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묘기라도 보듯이 계속해서 주위를 눈에 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곳을 들어왔다는 건, '그' 키리마루라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산지로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 것인가?

 

키리마루는 현실적이다.

산지로는?

하반의 11명은 드물게도 모두가 다 고루고루 친했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 끼리 조금 더 친밀해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여하튼 이 아이들은 모두가 다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산지로가 다른 친구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거울같다.

오싹할 정도로 맑은 물에 두렁 위를 걸어가는 키리마루의 그림자가 거울처럼 비춰진다. 흐르는 물이 아니라서 더더욱 선명하다.

앞을 걸어가는 산지로를 봤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키리마루의 그림자는 있었지만 산지로의 그림자는 물에 비춰지지 않았다.

"산지로, 왜 네 그림자는 물에 비춰지질 않는거야?"

 

산지로에게 물었다.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던 산지로는, 그제서야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정말 놀란 표정으로  "...왜 그렇지?" 

하고 한 마디 한 순간

그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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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써야지 흫흫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