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타마

오컬트 산지로

ㅇㄴㅇㄴ 2019. 11. 14. 00:39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만 10살의 유메사키 산지로는 아직도 모른다.

 

산지로에게는 아마도-나중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썩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였다.

보였다고 하기에도 조금 그렇다. 그건 '보인다'는 감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들리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때때로 손으로 만질 수 도 있다.

육감六感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나, 그 또한 열살배기 유메사키에게는 어째서 그게 그건지 설명하기 어렵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자신의 가장 크고 오래된 이해자인 아버지에게는 그나마 가장 눈에 잘 뵈는 '보인다' 는 말로 짧은 말이나마 설명하기는 했다.

 

아버지는 산지로의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는 사려깊게 충고해주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장님이라고 생각해보거라. 태어날 때 부터 장님인거야.

너는 그 사람에게 하늘이 파랗다는 걸 설명할 수 있겠느냐. 그 사람이 아침엔 파랗고 저녁엔 붉다는 얘기를 이해 할 수 있겠느냐?

어린 산지로도 그 말은 알아들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무섭다는 생각만은, 많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산지로 역시 어느정도 알았다.

산지로는 입을 다물고, 말을 돌리고, 새침떼고 웃는 법을 배웠다.

 

이 나라엔 팔백만의 신이 있어 만물에 깃들어 있다.

팔백만의 신, 그들의 옷자락, 그들이 가진 물건, 깃든 것, 그들의 사지와 파편. 

그렇게나 많으니 작은 인간 하나의 눈 사이의 틈새로 보이는 것도 많을 것이다.

 

산지로는 자신이 그 틈새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기도를 한 적이 없었다. 

수도승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도 길수호신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아버지 옆에서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아버지가 너도 안전을 빌어보거라, 하고 너그러이 말해도 산지로는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산지로에게는 그것들이 박수쳐 와주길 바랄 만큼 전혀 경외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쓰게 웃을 뿐, 딱히 말을 더 붙이진 않았다. 

 

 

그러다가 유메사키 산지로, 만 10살. 

인술학원에 들어갔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마르고 늘씬한 친구의 이름은 사사야마 헤이다유라고 했다.

'잘 부탁해, 사사야마.'

'....그래! 잘 지내자. 유메사키.'

산지로는 사사야마의 발치를 빙글빙글도는 갈색의 흙먼지 같은 것에 무심코 시선을 줬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고개를 들고 웃으며 인사했다.

저건 알고 있다. 톱밥같은 게 뭉친 것으로, 목수나 편수에게서 많이 보이는 것이었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 근처에 있곤 하다.

사사야마는 그렇게 산지로의 시선이 한번 움직인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조금 기가 세보이는 눈꼬리로 밝게 웃으면서 손을 마주 잡았다.

 

'산지로는 자주 란타로를 쳐다본다?'

같은 반의 키리마루라는 아이는 눈치가 비상히도 빨랐다. 입학금 낼 때 부터 만나서 내내 붙어 다니는 세 명중 제일이었다. 

그리고 단짝인 란타로도 마찬가지였다. 눈치가 빠르다기 보다는 주위를 세심하게 바라보곤 했다. 또 한 명은 두 가지 다 영 아니었지만, 여튼.

란타로 역시 '나도 말은 안했지만 조금 궁금하긴 했어' 라는 표정으로 산지로를 바라보았다. 

산지로는 차마 란타로를 본다기 보단 그 등짝에 무심코 눈이 가는 것이며, 넌 분명 소문의 보건위원회로 갈 것 같아..... 라는 가엾은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난감하게 웃으면서, 일전에 한 달리기 수업에서 나보다 빠른 사람은 또래중에 란타로가 처음이었거든. 다음엔 또 같이 달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그런가봐.

하고 절반 정도의 진실을 말했다. 다들 왁자하게 웃으면서 그래, 둘 다 엄청 빨랐어. 하고 납득해주었다.

산지로는 조금 긴장하면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다보니 사건사고도 금방 터졌다.

삼총사 중 제일 부자인 아이가 가져온 나무 장난감을 모두가 만져보다 뭘 어쨌는지는 몰라도 거의 분해되다시피 했다. 다들 손에서 와그르르 쏟아지는 조각들을 보고 

헛숨을 들이키고 신베가 울려고 준비하는 순간, 산지로가 무심코 말했다. '사사야마. 이거 혹시 못 고칠까?' 

아이들의 고개가 사사야마가 아니라 산지로에게 돌아갔다. 산지로는 곧바로 아차 싶었다. 

'헤이다유가 어떻게 이걸 고치는데?'

사사야마가 바로 발끈해서 말했다. 고칠 수 있어!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사사야마에게로 돌아갔다. 어떻게? 잘!!

'나 이런거 좋아해. 그런데 이제까지 말 한적 없는데 유메사키는 어떻게 알았어? 나 이런거 만들고 고치는 거 좋아하는거.'

산지로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애들은 다들 이거 움직이게 하고 싶어했는데, 사사야마는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구조같은 걸 살펴보는 거 같았어.

사사야마가 흐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런거 완전 잘해. 기대해봐라 자식들아.

아이들이 왁- 하고 웃고는 바로 뚝딱뚝딱 장난감을 조립하기 시작하는 사사야마의 곁에 몰려들었다.

산지로는 입 다물고 지내기로 결심했다.

 

사사야마 헤이다유는, 눈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눈치가 없다기 보다는 눈에 보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거라는 건 알았다.

둔하다기 보다는 자기자신이 언제나 중심이라, 흥미가 없는 거라면 눈 앞에서 바위가 말을 해도 내 머릿속에 들어올 일이 아니라고 치워버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조금 골치 아프다. 언제나 모르고 관심없는 것처럼 넘어가서 안심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을 찔러온다.

항상 눈치가 빠르고 경계가 강한 사람보다 이게 더 번거롭다.

-이제까지 말 한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대답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기습을 당하기 때문이다.

산지로는 사사야마와 그닥 가까이 지내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만 하는 이 정반대의 반 친구는 산지로와 같이 유메사키, 라고 성을 부르면서

산지로에게 거리낌없이 말을 걸었다.

그런 점만은 조금 부러웠다.

 

 

'유메사키, 내일 휴일에 같이 마을로 놀러가지 않을래?'

산지로가 등잔 불을 끄려고 할 때, 사사야마가 말해왔다. 산지로는 등잔 뚜껑을 씌우려던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조금 기울이다가 그러자, 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사야마가 킬킬대면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동안 너무 폐쇄되고 정리된 공간 안에만 있었다. 게다가 이 곳은 개인이 끌고 들어온게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언제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더 했다.

이런 환경에만 익숙해지면 안되니, 사람이 많고 어지러운 곳으로 한 번 내려갈 필요가 있었다. 

간만이니 주의해야지. 

산지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덮었다.

 

 

과자를 사먹자. 사사야마가 강아지풀을 흔들면서 말했다. 산지로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옆에서 걷는 사사야마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부르면 선생님들이 이놈들, 하고 당황하는 노래다.

산지로도 웃으며 따라 불렀다. 구름이 조금 끼긴 했지만 좋은 날씨였다. 

 

산지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육감이란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뒤에야 사사야마가 엇, 하고 길 한복판에서 걷던 걸, 조금 비켜났다.

뒤에서 큰 걸음으로 터벅터벅 걷는 한 무사가 눈짓 한 번 없이 스쳐 지나갔다.

'저 무사님은 옷도 좋은 걸로 빼입고는 왜 저렇게 축 쳐져있지?' 사사야마가 삐죽거리며 소근거렸다.

저게 좋은 옷인가? 하고 되물으려던 산지로가 이내 이전의 결심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산지로의 눈에 앞서 걷는 무사님의 옷차림은 더러운 이끼 같은 것들이 잔뜩 묻어서

좋기는 커녕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차고 있는 칼 쪽은 만져볼래? 하고 내밀어도 쳐내지도 못할 만큼 질척한 것들이 묻어 길가에 뚝뚝 흐르고 있었다.

 

저절로 눈이 남자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른다.

달팽이 같은 것이 지나간 것처럼, 미끌미끌하고 검은 진창이었다. 

 

산지로도 알고는 있었다. 이게 제 눈에만 보이는 걸 알았다. 이른바 환상이라는 걸 안다.

안다. 그러나 알아도 어쩌란 말인가? 내 눈에는 똑바로 보였다. 썩은 진흙이 꿀렁꿀렁 거렸다. 

보이지 않으면 모르나, 보이는 이상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보인다 해서 무언가 어찌 할 수도 없었다.

보인다 해서 아는 것은 아니니까

보여도 뭔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몰랐다.

언제나 몰랐다.

 

왜냐면 산지로에게만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 위로, 작은 발이 들렸다가

콱 하고

땅을 밟았다.

 

산지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사야마가 딛은 발을 중심으로 땅이 보였다. 흙색의 맨 땅이었다.

'뭐해, 유메사키. 가자!'

저 무사님이 불안하면 조금 떨어지게 천천히 가자.

 

...사사야마는

현실적이다.

자기 자신만 있으면 되었다.

세상엔 우선 내가 있고, 그리고 그 다음이 있는 아이였다.

모르건 자시건 내 눈 앞에 있는게 전부였다.

너무 많은 세계에 눌린 산지로와는 정반대에 있었다.

 

사사야마는 흙냄새 나는 맨 땅을 밟고서 산지로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썩은 진창내가 아니라 길가의 풀냄새가 산지로의 코에 스쳤다. 

산지로는 조금 망설이다가, 얌전히 그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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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은 다음에

오컬트 산지로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