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랑 헤이다유는 둘 다 '사귄다' 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서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이.
그리고 그 생각이 쭉 이어져서 엄한데까지 폭주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고는 헐 미쳤어! 하고 가까이 있는걸 머리나 발로 치거나 차거나 함.
취향과 성형은 정반대라 맨날 틱틱대고 투닥대고 싸움박질이지만, 성격과 궁합은 죽이 잘 맞는다.
서로도 조용한건 싫어해서 이런 관계가 사실은 마음에 든다.
특히 대놓고 싫어하지 않는건 단조, 속으로만 그런건 헤이다유. 하지만 티는 나지.
여튼 사이좋게 싸우는 사이. 어제까지 악악대다가 다음날이면 둘이서 훌쩍 놀이공원같은데도 간다.
데이트 코스의 하이라이트들은 전부 익사이팅한 놀이기구들. 으갹- 하면서 신나게 탄다. 점심 뭐 먹자 같은걸로 소리치다가 결국 둘 다 전혀 다른 음식에 순간 끌려서 그걸 먹음.
그리고 시시껄렁한 얘기들, 혹은 그렇지 않은 얘기들을 하거나 고함치거나 들어주거나 하면서 하루종일 같이 있는다.
즉 당사자도 알고 상대도 알고 주위사람도 다 알지만, 정작 중요한 한마디나 결정적인 한걸음만이 없는 상태라는 거다.
-연인이라던가, 애인이라던가 하는 달콤한 말을 붙이기에는 상당히 거친 관계에
서로를 대하는 행동같은 걸 보면 그런 말들이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녀석들이다. 호칭의 태반이 자식아, 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친한 친구라고 하는건 절대 아니라고 봐. 분명 걔네 둘은 서로를 좋아해. 이건 분명해.
그렇냐고 물으면 돌았냐는 소리부터 하겠지만.
-그럼 왜 저녀석들을 애인사이라고 부르기가 좀 망설여지는걸까?
-손도 제대로 안잡아봐서 그런거 아냐? 그 둘, 진도는 나간거 맞지? 사귄다며.
누군가의 한마디에 이 자리엔 없는 당사자 둘을 제외한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사내자식들 뿐이라
주먹으로 치면 쳤지 손을 잡는다, 같은 낯간지러운 행동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거다.
낯간지럽지만 결정적인 한걸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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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교실에 노곤노곤 퍼져있다.
헤이다유는 공책에 뭘 열심히 끄적이고 있고, 책상에는 잡동사니가 많음. 물통도 있다.
그 앞에 단조가 의자 등받이를 끌어안고 앉아서 헤이다유가 끼적이는걸 보고 있다. 드문드문 말도 함.
헤이다유 옆자리는 산지로, 지금은 비어있다.
겨울이라 헤이다유는 담요를 덮고 있음.
앞의 물통을 들어 올리는데 물이 없음. 헤이다유는 두어번 물병을 흔들어보다가 온 얼굴에 '갈까 말까 아 춥다 싫다' 고 써붙인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가 단조를 시킴. '나 물 좀 떠다주라'
'뭐 내가 왜'
'좀'
'싫어 춥단 말야. 니건 니가 떠다 마시든가.'
'좀 갔다오면 안되냐? 바로 요 앞이잖아!'
'바로 요 앞이니까 직접 가면 되잖아! 왜 날 시켜!!!'
'진짜!!'
'뭐!!!'
대충 대꾸하던 말이 늘 그렇듯이 커지고 커짐. 목소리가 악악 올라간다. 참 별거 아닌걸로 싸운다.
그런데 늘 그렇듯이 이 별거 아닌게 당사자에게는 참 진지한 문제가 된다.
'물 하나도 못 떠다주냐?!!
'물 하나를 못 떠서 가만있는 사람한테 행패야?! 내가 왜 그래줘야 되는데, 이 추운날에!!'
'추우니까!!! 너는 내..........'
'......내가 뭐!'
'.....아씨!!! 그냥 좀 떠다주란 말이다!!!!'
헤이다유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교실의 모두가 다 결국 대놓고 두 사람을 쳐다본다.
'너는 내 ' 다음에 올 말을 본인도 알고 단조도 알고 나머지도 다 알고, 나머지가 다 알고 있다는걸 두 사람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는 게 헤이다유 소년.
그 상황도 짜증나고 앞의 단조도 짜증나고 물도 없고 애들은 다 보고있고 아 이런 내 성격도 이 참에 화가 난다.
그리고 그건 단조도 마찬가지.
계속 고함고함을 치면서 뭐라뭐라 몇 마디가 더 왔다간다 한다. 불난집에 석유붓기다.
그렇게 둘 다 씩씩대는데, 그러다가.
'그럼 키스해주면 물 떠다준다!!'
'뭐?!'
'키스! 여기에 뽀뽀해주면 그 물 떠다주겠다고!!'
그러다가 단조가 정신이 나갔다.
자기 입술을 가리키면서 도끼눈을 뜨고 고함친다. 하구미들 전원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쇼자에몽은 책으로 얼굴을 덮었다
...웃는 중이다. 애들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전원이 순간 공통으로 떠올린 단어 하나는 '드디어'
그리고 그걸 헤이다유도 안다.
잠시 경악한 얼굴로 단조를 보던 헤이다유는 물통을 자기 머리 위까지 치켜들더니 그대로 단조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플라스틱 물병인데 세로로 세워서 찍었음. '웃기고 있네!!'
그리고는 담요를 반쯤은 팽개치더니 씩씩거리며 쿵쾅쿵쾅 나간다. 문은 부술듯이 열고 마찬가지로 닫는다. 쾅쾅
앞길을 가로막는건 모두 으깨버릴 기세로 쿵쿵거리는 걸음소리가 멀어진다. 급수실쪽이다.
머리를 얻어맞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단조 곁으로 애들이 슬금슬금 몰려든다.
이스케가 살그머니 한마디 건넨다 '화나게 했네....'
'.....아무 말도 하지마...'
단조가 헤이다유 책상에 머리를 박은채로 음울하게 답한다.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정도로 해석하면 되는 말이다.
---
잠시 후 산지로가 헤이다유가 부술듯이 닫은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온다.
애들이 단조를 둘러싸고 심심한 놀림의 말...아니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무슨일이야?
'어디 아파?'
'...... 내일의 내 몸이 아파. 빠르면 잠시 후부터 아플 예정.'
단조가 꾸물꾸물 중얼거린다. 정신이 드니 심신이 슬슬 걱정이 된다.
'흐흠? 참, 아까 헤이다유랑 마주쳤는데 무슨 일 있었어?'
산지로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묻는다. 단조가 크게 움찔한다. 다른 누가 대신 묻는다.
'헤이다유가 왜?'
'얼굴이 새빨개서는 급수실로 거의 뛰어가던걸.'
애들 입이 헤 벌어진다.
단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어....' 하고 뭐라고 입을 열던 찰나, 창문이 드륵 열린다. 그리고 전력투구로 뭔가가 날아와서 단조 관자놀이를 가격한다. 억!
주워보니 물병이다. 헤이다유의 플라스틱 물병. 물이 찰랑찰랑하게 담겨져 있다.
창문은 이미 다시 닫혀있고, 단조는 물병을 주워들고 물끄러미 본다. 얼굴은 여전히 빨갛다. 아니 더 빨개졌다.
한쪽이 용기를 냈다. 한마디 말이면 끝날 것을, 그걸 하지 못해서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말한거지만,
그래도 용기를 전한거다. 전력투구로 날아와 정확히 머리를 가격한 물병때문에 머리가 욱신거린다. 헤이다유의 뛰어가는 발소리가 벌써 멀어졌다. 물병은 일직선으로 분명하게 단조에게 날아왔다.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
단조는 물병을 한번 세게 꽉 쥐고는, 그대로 의자를 박차듯이 일어나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헤이다유의 발소리가 사라진 쪽으로 단조의 발소리도 사라졌다.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또 한번 부숴질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듯한 뒷문을 보고, 서로를 한번씩 쳐다보더니 푸하, 웃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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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헤이단.
뭔가 막......막......시트콤처럼. 순정만화 같은 관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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