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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의 머릿속에선 빛이 팍 터지고 카사마츠 선배는 머릿속을 삭 비우고 새 앨범을 감상하면서 밤이 지났다. 그리고 다음 날. 이날 키세는 오후에 촬영으로 점심 즈음엔 조퇴를 해야 했고, 내일부터는 주말이었다. 그래서 기회는 오전 뿐이었다. 무슨 기회? 카사마츠 선배한테 말 붙여볼 기회!
사실, 초능력자가 초능력 써가면서 해준 일이라 하더라도 따져보자면 그저 높은 곳에 있는 물건 하나를 내려 줬을 뿐이었다. 후배의 부탁이었다고 하면 정말 감사인사 한번 듣는 걸로 오케이, 더 해도 음료 한 캔 정도 받으면 아주 훈훈할 정도의 사건이다. 거기에 이래저래 인망도 좋은 사람이 한 거라 딱히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주말까지 껴서 날짜가 며칠 지나가버린 뒤에야 '보답하고 싶다'고 달려든다면 분명 무척 어색한 상황이 될 거다........고 키세는 판단했다.
키세 료타, 첫사랑의 달콤함에 젖어있더라도 뒤에 올 쌉싸름함을 무시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요......아니, 첫사랑? 무슨 비유가 이러지?! 여하튼 바보가 아니니까, 친해지고 싶다면 자연스러운 상황, 아-주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져야 했다. 자아여언스럽게!
그렇게 존재자체가 살짝 부자연스러운 사람의 대표 격인 키세 료타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 날의 두 번째 쉬는 시간에 보무도 당당하게 3학년 교실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자연히 뒤따르는 시선이나 소근거림을 죄다 흘려보내면서 키머리를 열심히 회전시켰다. 어젯 밤 돌려 본 시뮬레이션들 중에서 제일 괜찮은 걸로, 대본을 연습하듯이 이렇게 저렇게.
우선 미리 들어서 안 선배의 교실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카사마츠 유키오 선배님 있냐‘고 뒷문 근처 사람에게 물어본다. 여학생이라면 더 빨리 대답해주거나 불러 줄 거다. 그러면 전해들은 카사마츠 선배가 다가온다. 아무래도 약간 굳은 채로 오려나. 그러면 나는 평소보다 더 밝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어제 뵈었죠. 키세 료타라고 합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어요.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이렇게 운을 떼는 것이다.
그리고는 별 일도 아니었다거나, 그래도 너무 고마웠다거나, 정말 멋있었다거나, 너도 멋있잖아 라거나, 저 감사인사도 제대로 드리고 싶어서요, 또 기왕 이렇게 된 거 초능력자 후배로서 고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요. 언제 시간이 되시면, 혹시 이번주라도 주말에.......
그래그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괜찮은 것 같다. 키세의 기분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아주 완벽한 거 같았다, 그야말로 퍼펙트. 금방 카사마츠의 교실 뒷문이 보였다.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닫아놓지는 않았다. 선배가 앉아있는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을까, 우와 딱 보자마자 바로 선배 뒷모습만 보고 한눈에 찾아내면 어떡하지? 그러면 역시 운명일까?!
그리고 뒷문에 딱 들어선 키세는 과연 운명처럼 한눈에 카사마츠를 발견했다. 키세의 상상과는 조금 다르게 앞모습을, 통째로. 마침 카사마츠는 교실 뒷문으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
카사마츠의 시선이 키세를 향했다. 키세의 머릿속에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진짜 큰일이 났다-키세의 머릿속에서-. 카사마츠 선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갑작스레 인식한 순간 키세 머릿 안의 모든 시뮬레이션이 싸그리 날아갔다. 더 큰일난 건 이게 큰일인지조차 못할 정도로 지금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거 였다. 우와 큰일났슴다 아무 생각이 안 나네요. 선배가 날 보네, 선배가 날 보고 어? 라고 했어. 선배가 바로 눈 앞에....... 만약 영화라면 이 부분에서 [암전]이 되어 배우들을 전부 숨겨주고 관객의 상상에 맡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다. 카사마츠는 딱 마주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키세에게 말을 걸었다. 바로 자기 반 뒷문에 들어오기 직전이었으니 지나쳐버리기에도 그랬다.
[.....어....음, 누구 찾으러 왔어?] [불러줄까.] [....아니야? 어이.]
만약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카사마츠는 키세의 눈 앞에서 손이라도 흔들었을 것이다. 키세는 딱 굳어버렸다. 선배가, 선배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역시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당황해서 건방지게도 선배 앞에서 대답도 잊은 후배를 이상하게 보긴 하지만, 어째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똑바로 마주쳐오고 있다. 아, 선배. 오늘도 눈이 참 파라시네여 멋지기도 하지......
키세의 뇌세포가 헛소리만 반복하고 제대로 돌아가질 않자 반사적으로 그 다음인 키세의 몸이, 그 동안 해오던 동작으로 익숙하게 움직였어. 맞은 편에서 얘가 정말 어디 안 좋나? 하고 슬슬 진짜 생각하기 시작한 카사마츠의 손을 부드럽게 끌어 잡고, 이 얼굴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카사마츠 선배]
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 모리야마 네를 포함한 카사마츠 반의 급우들이 전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카사마츠 선배는 대답했다.
[손 놓고 말해라.]
무진장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키세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
[키세 료타. 맞지?]
[넵]
[네가 유명한건 알지만, 그게 너랑 내가 아는 사이란 뜻은 아니다.]
[넵]
[그리고 선배란 건 아무리 같은 학교라도 한두번 얼굴만 본 후배가 그런 갑자기 장난친다고 선뜻 받아주는 사람도 아니야.]
[지당하십니다.]
[......그래서 왜 왔어.]
[.......그.......인사.]
[똑바로 말해라.]
[어제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려고 왔슴다!]
카사마츠는 팔짱을 낀채 벽에 기대고 있었다. 표정은 험악했다. 그에 비해 그 앞의 키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었다면 바로 저렇게 죽어야 한다는 견본을 뽐내며 왜소하게 서있었다. 두 사람의 키 차이가 역전된 것만 아니라면 누가 봐도 한 톨 의심할 바 없는 학교폭력의 현장으로도 보였다.
키세의 마지막 말에 카사마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은 학교 내의 뒷뜰. 카이조는 교정이 넓어 공터라고 불릴만한 장소가 많아 그 중 하나에 단 둘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카사마츠는 교실 뒷문에서 키세가 입을 연 순간, 제가 저질러놓고는 오히려 새하얗게 굳어버린 모델후배의 멱살 비슷하게 잡아채 질질 끌어서 일단 바깥으로 나왔다. 키 큰 모델은 여기까지 질질질 순순히 끌려왔다.
카사마츠는 손으로 가볍게 이마를 짚었다. 눈 앞의 키 큰 모델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무시했다. 그래서 대체 사람들 다 보는 교내에서 오늘로 딱 세 번째 얼굴 마주한 남자 선배의 손을 소중히 잡아채서 무슨 연애드라마마냥 말한 이유가......후, 그 부분은 그냥 잊자, 떠올리지 말자하고 되새겼다.
우선 카사마츠는 놀랐다. 그 모델미소가 카메라나 십만 대중들이 아니라 오직 한사람한테만 향하는 때도 있었구나, 하고. 그리고 그 조각같은 얼굴의 클로즈업에 순수하게 감탄도 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자기란 게 문제였다. 뒤에서 보고 있던 모리야마를 필두로 한 남자 급우들이 한 반 년치 놀림거리를 챙겼을 거고, 여자 급우들은......카사마츠도 여기선 생각을 멈췄다. 결국, 그저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그런 장난 치지마라.]
[명심하겠습니다.]
키세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손 놓고 말해라, 이 한마디에 찬물이 머리부터 부어진 듯 싹-하고 전신이 가라앉았다.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내내 한 시뮬레이션으로는 자신은 계속 웃고 있었고 카사마츠 선배는 처음엔 좀 무뚝뚝했지만 나중엔 살짝, 드물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 짓는 부분은 사실 잘 상상이 되질 않았지만......선배 웃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역시 상상 속의 비극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현실의 비극은 이렇게나 가슴 아프고 울적해진다. 역시 ‘카사마츠 선배’네요, 단 세 번 만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생각한 대로 되질 않아요......
카사마츠는 카사마츠대로 요 건방지고 앞뒤 없는 녀석을 보통 후배 대하듯이 일단은 대했다. 그러니 뭐랄까 반응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해야하나, 그 이상이라고 해야하나. 눈에 띄게 축 처진 게 보였다. 아까의 그 장난인지 뭔지야 어쨌든 뒤로 두고, 각잡고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일에 대한 인사라네? 이건 또 의외였다.
학교는 밥 먹듯 빠지고 가끔씩 오는 날에는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 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람 대하는 것도 방글방글 웃지 선은 제대로 긋고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일 하나 가지고 이렇게 일부러 고학년 교실까지 직접 올라와 다시 한 번 예의를 차리려 했다니. 카사마츠는 본인이 그동안 키세 료타를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멀리서 얼핏 본 모습과 소문만으로 살짝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인정했다. 그래선 안 되겠지.
카사마츠는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쳐져있는 유명한 후배를 슬쩍 다시 쳐다보고는 다시금 한숨을 작게 쉬었어. 그 소리에 또 키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건 또 참. 카사마츠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부러 찾아와줘서 ......다시 봤다.]
키세는 고개를 단박에 번쩍 들었다. 선배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드물게도(세 번밖에 안 봤지만) 약간 고개를 숙인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금방 다시 얼굴을 들고 키세를 쳐다봤다. 아, 또 저 눈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너한테 편견 같은 걸 조금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좀 전은 내가 미안했다. 인사는 잘 받을게.]
카사마츠가 아주 조금 웃었다.
키세 머릿속에서 음악이 울려퍼졌다. 이건 그래, 로맨스 영화에서 주인공이 드디어 뭔가 큰일 하나를 해냈을 때 나오는 배경음같았다. 빠-바바바바바 빠- 지금은 왜 많은 장르 중에서도 로맨스인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키세는 일생 최대의 용기를 그러모았다. 모으기는 쉬웠다, 방금 아주 살짝이지만 선배가 웃는 걸 봤으니까. 그 얼굴만 떠올리면 지금 이 순간부터 두 달 정도는 반찬 없이 밥만 먹고 양파 그라탕 수프에 양파가 없어도 홀랑홀랑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무지하게 텐션이 올라갔다. 바로 이런 기분으로 ‘사랑은 비를 타고’의 남주인공이 빗속을 촐싹촐싹 뛰어다녔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럼 곧 종이 칠 테니 이만, 너도 어서 1학년 교사로 돌아가.’ 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선배다운 말을 끝으로 시원하게 사라지려는 선배를 붙잡고, 키세는 앞뒤없이 일단 내뱉었다.
[전화번호 좀 주세요.]
[어?]
원래라면, 키세 머릿 속에서도 날아간 어제 키세의 시뮬레이션에서는, 만나자는 약속을 가볍게 잡고 제대로 잡으려면 연락처가 필요하겠네- 그럼 제 폰 번호를 드릴게요 여기로 연락하세요- 하고, 아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아연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인사도 잘 했으니 서로서로 괜찮은 인상 남긴 채 깔끔히 사라지려는 선배를 붙잡고 늘어져서 무작정 번호주세요-라고 하고 있었다. 피싱사기범도 이보단 정중하게 전화번호를 요구할 성 싶었다.
그런데 카사마츠는는 뒤돌아선 자기 옷자락을 틀어 쥔 후배 얼굴을, 특유의 미간을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가만 보더니-그 와중에 이 점이 또 선배답다고 키세는 속으로 막 외치고 있었다- 잡히지 않은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폰 줘봐. 키세는 번개같은 속도로 휴대폰을 바쳤다.
선배가 꾹꾹 키패드를 누르는 그 순간이 한순간 같기도 하고 천년만년 같기도 했다. 키세는 멍하니 보고 있었지. [아 그런데.] ‘그런데’라는 단어에 키세가 질겁했다. 혹시 선배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나? 왜? 휴대폰이 마음에 안 든다든가, 키패드가 선배 거랑 설정이 달라서 이름 쓰는 게 귀찮아졌다든가?! 폰을 바꿀까?! [왜 그러세요?!] 놀란 나머지, 그리고 생각이 헛돈 나머지 목소리가 삑사리가 났다. 선배는 힐끗 키세를 볼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연예인은 휴대폰 두개를 쓰기도 한다던데, 여기에 바로 입력하면 되는 거야? 아니면 내 걸 줄 테니 네가 입력할.]
[아, 네 물론이에요! 거기 하시면 돼요. 제 프라이빗용 휴대폰이에요. 완전 개인용이고요, 업계쪽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아무 걱정 없이 키패드를 누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키세는 카사마츠의 말을 반쯤 끊다시피 하며 우다다 말했다. 혹시라도 업무용 폰이라면 안 적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말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카사마츠는 그 말에도 그래, 하는 말 외엔 별 반응이 없었다. 선배 말 끊어먹었다고 한소리 들을까, 하고 오히려 정신을 차린 키세가 먼저 생각을 했다.
돌려받은 휴대폰의 액정에는 카사마츠 유키오라는 이름과 그의 것일 폰넘버가 찍혀있었다. 키세는 신주단지를 모셔도 이보단 덜 정성스럽게 모실 것 처럼 휴대폰을 받아들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이젠 진짜 종 치겠다. 그리고 나 휴대폰 메일은 그닥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문제없어요. 제가 많이 하니까요.]
[그게 답이 된다고 생각하냐? 교실에 들어가기나 해, 어서.]
정말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 카사마츠는 어서 가라는 손짓 한 번을 끝으로 뒤 한번 안 돌아보고 3학년 교사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키세는 순간 아까처럼 용기를 그러모았다-기 보다는, 정말 요만큼 남아있던 미니용기가 갑자기 고개를 쏙 내민 것 마냥, 톡 하고 입을 열었다.
[카사마츠 선배!]
'카사마츠 선배' 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어.
[또 봬요.]
[그래.]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대답하면서 손을 가볍게 휘휘 흔들어주는 걸로 끝이었다. 키세도 몸을 돌려 1학년 교사를 향해 걸어갔다. 서둘러 걸었다. 발걸음이 급해지고 숫제 뛰었다. 세팅한 머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데도 지금은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은 우산을 든 영화의 남주인공보다 자신이 더 행복했다.
조퇴한 후 점심은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와중에 차에서 먹었다. 밥이 꿀맛이었는데 이건 밥 맛이라기 보다는 그걸 입에 넣는 키세의 입 안부터 무척이나 행복한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게 뭔 줄 아나요, 고급 도시락의 나무젓가락이 아니야! 젓가락으로 가치를 치자면 지구를 세 번 덮어도 모자랄 만큼의 가치를 지닌 카사마츠 선배의! 전번이! 폰 넘버가! 있다구요!! 매니저는 얼굴이 자체발광을 하는(진짜 빛 말고) 키세를 이젠 숫제 질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학교로 데리러 와서 차로 걸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표정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존잘님이 이번 행사에 책 한권 내신다고 해서 달려갔는데 인포엔 없었던 최애컵 중철 신간이 세 권씩 더 있더라 같은......?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이었다. 푹 찌르면 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료타,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있었죠! 엄청나게 많이요.]
마치 아까부터 물어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키세가 번개같이 답했다. 그래, 있었다. 오늘은 무척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단한 일들이었다. 아침부터 유난히 머리세팅에 신경을 썼고, 카사마츠 선배의 얼굴을 이번엔 제대로 정면에서 보고. 약간 실수를 했다. 선배한테 옷을 잡혀서-멱살이지만- 끌려 나가고 바깥에서 단 둘이 된 다음엔 선배한테 혼나고. 그런데도 선배가 나를 오해했었다며 오히려 사과해주고. 자신의 감사인사도 확실히 받아줬다.
그리고 조금 억지를 부렸더니 휴대폰 번호를 따냈다. 아 미치겠네. 이 보물을 휴대폰이란 초라한 기계 안에 넣어두어야 하다니. 전자정보도 눈에 보이는 곳에 진열해두면 안심될 텐데, 집에 돌아가면 바로 백업해놔야겠어, 그리고, 그리고 선배를 드디어 불러보았다. 카사마츠 선배, 하고 말이다.
입을 뗀 순간 선배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라고 되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앞에 또 하얘졌었는데 선배는 그냥 대답해줬다. 내가 카사마츠 선배, 하고 또 보자, 니까 그래, 하고. [또 보자]니까 [그래] 하고 말이야! 으아아아.
그리고 키세는 깨달았다. 아, 저 사건들이 전부 쉬는 시간 10분 안에 다 이루어졌다는 걸. 겨우 10분? 정말로?
키세의 체감으로는 두 시간은 걸린 것 같았지만 10분이 맞았다. 조금 일찍 수업을 마쳐서 3학년 교사에 도착했을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렸었다. 그리고 선배가 들어갈 때 쯤 수업시간 종이 울렸다. 키세는 약간 지각을 했다. 그러니 거의 정확히 10분이 맞았다...... 이상하지. 시간이 길어졌다. 아니, 길어진 건 바로 일요일, 하늘을 뛰는 남자에게서 머리를 밟힌 그 순간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학교-촬영-연구소. 키세의 시간은 다른 학생들보다 일정이 빡빡했지만 한 시간은 한 시간, 일주일은 일주일, 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걸 사무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일요일부터 시간이 길어진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너무나 많은 일을 한 것 같았다. 특히 오늘이 정점이었다. 오늘 10분 동안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서 아마 이전의 일주일동안 있었던 일보다도 머릿속 공간을 훨씬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선배라는 사람이 그렇게 좋아?]
[엇,네?]
조금은 기가 찬 듯한 매니저의 말에 키세는 깜짝 놀랐다.
[제가 지금 입 밖으로 소리내서 말했어요?]
[아주 그런 쇼가 없더라]
[하하......]
키세는 웃고 말았다. 네, 엄청 좋아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좋아요.
더 놀라운 건 앞으로 이보다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에요...... 딱 세 번 만났지만, 그나마도 그 한 번은 스쳐지나간데 가깝지만, 이상하지요. 만날 때 마다 더 좋아졌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져요. 로맨스 소설에서 마치 당연히 그리되어야할 듯이 주인공이 점차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앞으로 남은 일은 그러할 일밖에 없는 것처럼 좋네요. 왠지 이유를 말하라면 궁색해지도 하고 할 말이 엄청 많아지기도 해요......아차, 그런데 왜 많은 소설 냅두고 로맨스 소설이지.
키세는 이젠 슬슬 소용없어 보이는 태클을 스스로 걸고는 휴대폰을 고쳐 들었다. 자, 이제 이 행복한 기분을 끌어안고 모아 메일을 보내야 했다. 첫 메일. 이 휴대폰에만 번호가 있으니 제가 먼저 메일을 보내야 선배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가 저장이 될 거야. 선배의 휴대폰에.......내 번호......내 프라이빗폰 번호가....... 선배가 '키세 료타' 하고 저장으으을으아아아아.
차 안에서 뒹구는 키세를 매니저는 이제 그냥 못 본 척 하기로 했는지 이제는 백미러도 보지 않고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그 때 그 청춘을 그냥.......으이그....] 하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키세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자, 메일을 보낼 거다. 첫 메일이다. 사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제의 시뮬레이션에서는 이 메일로 주말 약속을 잡고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건 키세도 이젠 기억을 못했다. 키세는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라고 보내야 선배와의 대망의 첫 메일을 잘 보냈다고 동네사람들한테 소문이 날까?
역시, 무난하게 [선배 키세에요. 이 번호로 저장해주세요, 잘 부탁드림다-] 같이, 일반적인 문구가 좋을까?
아니면 좀 귀여운 후배티를 내볼까...... 아차, 나는 이제까지 선배 앞에서 제대로 밝고 성격좋은 후배 티를 냈었나?! 혼나고 억지만 부렸던 거 같은데......역시 그럼 오늘 조금 늦게 들어가시게 했으니까 [선배, 키세입니다. 오늘 저 때문에 수업 늦으셨을 거 같은데 죄송해요ㅠ]로 시작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거다. 그 다음에 선배가 괜찮다든가, 그래, 라든가 답을 보내주면 나도 맞춰서 조금씩 안부나 개인정보를 물어보면서...... 내 일정도 피력하고, 내 일정이 빌 때 제가 쏠테니 놀러가자고 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선배 초능력 정기검진 일정 물어보고 날짜가 비슷하면 우리 연구소에서 검진받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아, 초능력. 그러고 보니 선배가 하늘 나는 거 다시 보고 싶다, 나무에 뛰어오르는 거 진짜 멋있었는데. 메일 주고받으면서 중간에 슬쩍 선배 하늘 나는 거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하면 역시 실례겠지? 비매너겠지? 그런데 나는 선배가 보여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백열전등, 야광해파리, 밤에 뜨는 태양이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키세는 스튜디오 도착하기 전까지 [그래 이렇게 메일 보내면 너는 세계 최고의 메일러가 됐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거다 내 확신한다! 확신한다고 고만하라고] 라는 매니저의 확답을 얻은 고르고 고른 문구, [선배, 키세 료타임다. 오늘 감사했어요o(^∀^*)o! 저 때문에 수업 조금 늦으신거 같아 죄송해요(ノД`)・゜・。지금 스튜디오 가는 길이에요. 메일 자주 보낼게요!]를 보냈다.
그 후 5분 정도 후에 [괜찮아. 수고해라.] 라는 답문을 본 순간 또 싸그리 잊어버릴 선배와의 메일대계획을 스튜디오 도착하기 전 한 시간 동안 신나게 생각했고 떠들었다.
카사마츠는 키세와 헤어지고 수업 종이 아슬아슬 끝나기 전에 달음박질쳐서 자리에 안착할했다. 조금 뛰어야 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쉬는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 들어갔더라면...... 지금 수업 시작에 맞춰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교실 뒷문으로 뛰어들어오는 카사마츠를 향한 급우들의 시선이 쫘악 모였었더랬다.
카사마츠는 동시에 앞문으로 들어오는 교사를 향해 꾸벅 목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날아왔냐?] 는 옆자리 모리야마의 속삭임에 말없이 오른팔목의 시계를 내밀었다. 이게 카사마츠의 초능력 제어기였다. 지금은 스위치 온 상태였고, 이건 '그냥 뛰어왔다' 는 표시였다. 모리야마는 금방 고개를 자기 책상 쪽으로 돌렸다. 초능력자는 자신의 제어기 스위치를 on으로 켜두면 초능력이 억제된다. 카사마츠의 능력은 '무해' 판정이 나서 온오프를 스스로 할 수 있었다.
카사마츠는 서둘러 교과서를 꺼내며 문득 생각했다. 그러보니 그 녀석은 제어기, 자기조작일까, 등급은 어떨까. 물어봐도 되겠지만 유명한 녀석이니 아마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겠지,..... 유명한 녀석이라. 흠. 카사마츠는 교사의 시선에 서둘러 교과서를 펴고 칠판을 향해 집중했다.
툭, 필기를 하던 카사마츠의 공책 위로 작은 종이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방향을 보니 모리야마 쪽이었다. 뭐지 하고 펴봤더니
-YA! 호모!-
필체도 틀림없는 모리야마의 필체였다. 옆을 보니 배를 잡고 소리없이 웃고 있었다, 카사마츠는 잘 참았다. 자 참자, 참자. 저 녀석은 나랑 코보리 아니었으면 진작 어디 잡혀가도 잡혀갔을 놈이야. 길 가던 여성을 붙잡고 운명이니 뭐니 하는 드립을 쳐대서 검은방에 가든 하얀집에 가든 어딜가든. 카사마츠는 훌륭히 참아내고 쪽지를 반으로 찢었다.
좀 전에도 말했었지만 키세의 갑작스러운 당신을 찾아왔어요~ 드립엔 누구보다도 그 어택을 바로 정면에서 받아야 했던 카사마츠가 가장 놀랐었다. 저도 모르게 야 이놈 진짜 모델이구나 생긴 걸로 먹고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서 한마디 하기로 했더니, 관용어구가 아니라 진짜로 한마디 만에 개껌을 뺏긴 개처럼 귀며 꼬리를 축 늘어트려 버려서 또 오히려 저가 당황했다. 얘는 대체 뭐야? 이제까지 키세를 딱 세 번 봤는데 그 세 번마다 모두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마주한 모습은 알던 것과도 듣던 것과도 영 달랐다,
희귀 능력자, 기적의 세대 키세 료타, 십대 모델 키세 료타, 자기에게 머리를 밟히고도 괜찮다고 말하던 남자아이,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 편지를 주워주었던 남자 후배, 오늘 갑자기 찾아와 쓰잘데기 없는 장난을 치고는 꾸중에 무지하게 풀죽던 키세, 감사인사를 하러 왔다던 키세.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다들 너무 달랐다. 아니, 그저 표현이 다양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를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로 평가하기에 카사마츠와 키세는 너무나 만난 시간이 짧았다. 그리고 카사마츠는 짧은 시간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한마디로 단정짓는 사람이 아니었다. 키세는 이런 애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이 만나야겠지.
'더 만난다’라. 카사마츠는 가방 속에 있을 휴대폰에 힐끔 시선을 줬다. 오늘 뜻밖에도 그 키세랑 폰 넘버도 교환했다. 교환이라기엔 아직 상대방의 번호가 자신한테 없지만...... 참, 별일이지. 그 유명인이랑. 이 수업이 끝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을 하이에나 같은 급우들을 어떻게 처치해야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찾아온 이유는 어제의 일을 얘기해주면 되고, 그 멍청한 드립은 애가 연예인이라 그런지 참 연극적이더라 대충 이렇게 변명해보고.......내려가서도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고 인사를 듣고 잘 헤어졌다, 이러면 되겠지. 다만 의외로 눈치도 빠른 모리야마와 예리한 코보리에게는 아마도 대충은 얘기를 해줘야겠군.
그래, 키세는 표정도 참 극적이었다. 카사마츠가 짧게 본 바로는 그랬다. 일주일도 안 된 짧은 기간 동안 생각보다 키세의 여러 얼굴을 봤다.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웃거나, 풀죽어하거나...... 그런데 어쩐지 키세의 표정이나 언행, 행동은 묘하게 극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너무나 익숙하게 자리잡은 나머지 모든 행동이 진심으로 웃더라도 웃는 표정을 지어낸 것 마냥, 극적이었다. 이 때는 이런 표정을 지어야해, 저 때는 저런 표정을 지어야해 하고 학습한 것처럼. ......그래도 역시나, 짧게 만난 타인이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카사마츠는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딱 한번, 마지막에. 이제 들어가라고 말하고 몸을 돌린 순간 팔 하나가 정말 갑작스럽게 뻗어와 자신의 붙들길래 고개를 돌렸을 때, 전화번호를 달라던 키세의 그 표정. 그 얼굴.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한 용기를 낸 것 같은 그 얼굴만큼은......
아니, 카사마츠는 뻗어나가는 생각을 멈췄다.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카사마츠는 아직 키세를 잘 모르니까. 다만 카사마츠는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이제까지 딱 세 번 봤던 초 유명한 후배에게 다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선히 번호를 건네줬다. 그는 누군가가 진실하게 말할 때 꼬치꼬치 따지거나 대놓고 거절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점심시간, 소문거리를 찾아 다른 반에서도 몰려온 하이에나 떼를 간신히 피해 적당히 먹잇거리를 던져주고, 두 친우에게는 딱총새처럼 쪼이고-주로 한명이, 소개팅소개팅소개팅하고 우는 새마냥- 오후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 카사마츠의 휴대폰엔 문제의 그 후배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화면을 본 카사마츠는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이건 또......문자는 왜 이렇게 텐션이 높은 거야.]
카사마츠는 정말 문자다, 우와 유명인한테서 문자왔다고 떠드는 친구를 쳐내고, 답장을 보냈다. 수업종이 울리고 카사마츠는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 만날 때 마다 다른 모습이더니, 이 녀석은 문자에서의 모습도 다른 것 같았다. 참 다채롭기도 하지, 1학년.
그리고 그게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
토요일. 키세는 휴대폰에 코를 박은 채로 연구소로 향했다. 전자파가 있으면 안 되는 검사를 받을 때는 멀리 치워둔 저 휴대폰이 울리나 안 울리나 만에 하나 혹시라도 호옥시라도, 나도 안 그럴 걸 알지만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가지는 생물이라고요......선배가 먼저 전화를 걸었는데 내가 이딴 검사 받는다고 전화를 못 받으면 어떡해애애 하는 현실성없는 걱정을 하면서 보냈다. 물론 전화는 안 걸려왔다.
일요일, 지금은 키세도 삭- 잊어버렸던 주중의 머릿속 계획에 의하면 선배랑 차라도 한잔 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잡지의 카메라맨도 [오늘 키세 씨 표정 정말 좋네요] 하고 한마디 할 정도로 아주 즐겁고 산뜻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끝낸 다음에는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집에 콕 틀어박혀서는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요정이 쉴 새 없이 출연한 것 마냥 카페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 마냥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키세가 보통 친구들에게 하던 대로 쉴 새 없이 메일수다를 우다다 떨어댔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보내는 키세의 평균 페이스로 보자면 마치 건강한 비글과 잠든 비글의 활동량 차이만큼 송신량에 차이가 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텐션도 잠든 건 아니었다. 송신한 메일의 텐션은 받아보는 카사마츠 선배가 [야 요즘 남자애들은 메일에 이모티콘을 많이 써?] 하고 친구들한테 한번 물어볼 정도로 하이텐션이었음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 왜긴 그건 첫사랑 하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좋은 모습 예쁜 모습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청소년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아니 왜 비유가 또 첫사랑이지......? 여하튼, 왜 그 친구들이랑 바다에 놀러갔다고 치면 다들 처음엔 발끝만 톡톡 담그면서 바다다~ 어머~ 파도가 간지러웡 하고 소극적으로 놀지 보자마자 으워어어어 잇츠어씨!! 하고 물에 다이빙하는 사람은 좀 적은 것과 비슷했다. 물에 쫄딱 젖은 모습을 보이기에는 아직 좀 쑥쓰러운 단계였다.
메일 한 통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매니저가 제발 그만......넌 이미 최고의 메일러다 하고 쓰러질 때까지 이런 말투 괜찮으냐 이런 내용 괜찮으냐고 닦달한 다음에야 송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카사마츠 선배는, 자신이 미리 말했던 대로 확실히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스타일인지 항상 답장은 5~10분, 많게는 한 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고 키세도 사람이었다. 초반처럼 선배의 답문을 볼 때마다 뇌 속이 화이트아웃되는 현상은 적응을 통해 이틀 만에 아주 크게 완화되었다. 그리고 카사마츠 역시 적응이 빠른 사람이었다. 첫날, 이튿날은 키세의 메일에 꼬박꼬박- 대체 답을 뭐라도 보내야할지 아리송한 키세의 혼잣말/자기PR에 가까운 메일에도 짧게나마 답을 해줬는데 이틀 만에 쿨하게 포기했다. 끝이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쓰잘데기 없다고 판단한 문자에는 답을 포기해버렸다......
선배 사나이시네요...! 이틀 만에...! 쿨해요! ......다행히 키세의 프라이빗 휴대폰엔 수신보다 송신이 많았던 세월이 n년이라 전혀 문제없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액정화면에 글자로 나타나는 카사마츠 선배는 특유의 조금 엄하고 딱 자르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아서 그런건지, 글자다 보니 약간 문어체가 나와서 그런지, 직접 대화하는 것보단 말투가 살짝 부드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처음 키세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성실하게 꼬박꼬박 답장을 해주는 편이었다. 키세가 상상한 첫 인상은 어쩐지 문자로도 딱딱할 것 같은 이미지였었다, 첫 인상은. 그리고 키세는 이게 너어무 좋았다. 선배의 색다른 모습이네요, 메일 굿잡!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머리통도 밟히고 혼도 나고 웃는 모습도 보고 메일에서의 모습도 보고 하, 버라이어티.....! 키세의 생각에도 인터넷 연애 소설도 이보단 진도가 빠르지 않을 것 같았다......어? 아니 왜 연애소설이죠 많은 소설 냅두고?
여하간 키세는 고민고민하다 나름 신중히 단어를 골라 문자를 보내고, 선배가 답장을 해줄만한 문자라면 잠시 후에 올 답장을 두근거리면서 기다렸다. 나중에 답이 오면 발을 동동 구르고...... 답이 오면 복사해서 저장함에 따로 옮겨두고, 여기엔 또 무슨 리리플을 해야 [이야- 키세 료타는 문자 답장도 참 잘하네-]하고 온 동네사람들이 알아줄까! 하며 머리를 굴렸다. 키세는 일요일 오후를 내내 그렇게 보냈다.
엄청나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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