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조금씩 하늘을 물들이면서 퍼지고 있을 때, 멀리서, 야아-하고 손을 흔들면서, 바로 어제에도 본 것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그 괘씸한 자식이 돌아왔다.

 

란타로는 괭이를 팽개치고 논길을 휘적휘적 걸어오는 키리마루에게로 달려갔다. 야아 란타로! 건강해 보인다. 키리마루는 오랜만에 만나는 만나 자신을 반기며

달려오는 친구를 맞으러 양 팔을 활짝 벌리면서 웃으려고 했다.

 

날아오는 주먹을 간신히 막았다. 그동안 나름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이런 쪽의 감에는 자신 있었는데, 아무리 예상 못한 기습이었다고는 해도, 정말로 겨우 막았다. 주먹을 붙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서 곧이어 다가오는 란타로의 왼쪽 주먹은 막지 못했다. 뻑-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제대로 인정사정 없는 일격이었다.

'라.....'

키리마루의 당황한 목소리는 첫마디도 말하지 못한 채 다시 쿠나이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막혔다.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로 눈이 치떠질 수 밖에 없다.

둘은 언제 소매에서 꺼냈는지 모를 쿠나이를 맞부딪힌채 한쪽은 누르고, 한쪽은 전력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닌자답지 않은, 날붙이끼리 갈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카각카각 들린다.

'....노..농사짓고 있다더니, 그래도 배운게 녹슬진 않았나 보네...'

이런 상황에서도 물에 빠져도 입만은 뜰 것 같은 목소리로 유들유들하게 말을 건넸다. 씨익 하고 얄미워 보일거 같은 미소도 지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려 나오는 것 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처음에 맞은 얼굴도 부어오르는거 같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을 내리누르는 친우의 무게까지도 팔 하나로 버티지 않으면 정말 저 날붙이가 목이라든가 가슴이라든가를 찌를것만 같았다.

으아, 입안 터진거 같아.

'...멍청한 자식이.'

기억속의 안경잡이 란타로와는 영 갭이 있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바보같은 자식이. 이제와서 뭐가 -란타로, 건강해 보이네............'

말끝이 흐려졌다. 쿠나이에 들어가는 힘이 조금 느슨해졌다. 란타로는 키리마루에게도 표정이 보이지 않을만큼 고개를 숙였다.

'대체, 대체 몇 년...몇 년을.'

말이 짧다. 그리고 이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참는 듯이 말도 삼키고 다른 것도 삼키면서 란타로는 쿠나이를 든 손을 다시한번 휘둘렀다.

키리마루는 식겁하며 손을 들었다. 챙-하는 소리가 났다. 투정부리는 것 같이 가벼운 소리였다.

'......'

키리마루는 항복했다는 듯이 털썩, 그대로 땅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동안 얼굴 안 비춘건 잘못했어. 미안. 그래도 가끔 편지도 보냈잖아.'

'세 번 왔어. 잘 지냅니다, 잘 지냅니다, 잘 지냅니다.'

말투가 아무래도 서늘하다. 키리마루는 이러다가 이번엔 쿠나이 말고 다른 것이 날아올 거 같다고 생각했다. 땅파면서 산다더니, 아대도 여전히 하고 있다. 독침같은게 날아올지도 몰라.

'....그래도 너무한거 아냐?  방금 도이선생님 보고 오는 길인데, 선생님은 잘 돌아왔다면서 환영해줬다구. 스승과는 감격의 상봉이었는데.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는 다짜고짜 어퍼컷을 날리다니. 상처야, 상처받았어 나!'

씨알도 먹히지 않을거 같은 엄살을 부리는 꼴이 한대 더 패주고 싶다. 퉁퉁 붓기 시작하는 볼을 가리키며 이젠 숫제 울먹이는 표정까지 짓고 있다.

'선생님한테 이 다음에 나 만나러 간다고 했어?'

'음? 응.'

'그래서 안 때리신 거야. 내가 대신 후려쳐줄테니까.'

주먹이 올라왔다가, 힘없이 키리마루의 가슴께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툭.

...툭. 툭. 툭. 툭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자식을 환영하는 건 부모의 역할이야.'

'.......'

'...그리고 그런 개자식을 혼내는건 친구의 역할이고..'

'....미안'

툭, 툭, 툭

'멍청아...'

'미안'

'내가 정말, 얼마나........'

'미안해, 란타로'

그리고 이제 삼키지 못한 것이 턱을 지나 떨어져 낡은 옷에 번졌다. 우는 친구를 안아주기조차 차마 미안해서 키리마루는 허공에

몇번이고 손을 뻗다가, 거두다가, 일어날 생각도 안하는 친구 덕에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다만 자신이 일어나지도 못하게 깔고 앉은 친구의 손만은 닿아서, 그렇게 손을 뻗어서 마주 잡았다.

 

 

===

이상하지 키리란이든 키리+란 이든 이름만 다르지 내게 있어서 속은 거의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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